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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Changes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3.12.06 02:00

최근 들어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낀다. 흔히 말하듯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기보다는, 스스로 그걸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바빠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면 어른들이 왜 몇십 년 전이 어제같다고만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도 '어른'이긴 하다. 몇 년 전, 더는 2년 전의 나와 2년 후의 나 사이의 간극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글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스물 넷의 나는 2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그러한 사실을 실감하지 못 했던 것에는 고시원에서 살았던, 멈춰 있었던 2년의 시간 역시 그 역할을 발휘했겠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생활 반경은 넓어야만 했다. 고시원은 행복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재차 체감한..

편해서 좋을 수 있지만, 좋아서 편할 수는 없다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3.05.13 23:20

여의도역 투썸에 앉아 약 한 톨 정도 남은 인류애를 말하던 중이었다. 광독님은 최근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에 대해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노력해야만 만날 수 있게 되고 있다며. 순간 좋음과 좋아함의 차이를 떠올렸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집에 돌아오며 마포대교 위를 걷다가, 문득 이 상태가 좋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걷는 게 좋은 거지, 멈춘 상태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아무래도 밤의 마포대교에서 올블랙으로 우두커니 서 있으면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물리적 정지 상태가 현상 유지의 유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인식했다. 다리의 끝이 보여, 아쉬운 마음에 벤치에 앉았다. 이건 좋았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멈춘 상태이긴 한데. 좋음을 인정하는 건 매..

대학원생의 근황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3.05.05 00:50

몇 밤 전 홍대의 골목 사이에서 누나는 그랬다. 본인보다 하루만이라도 오래 살라고. 이유는 본인에게 내가 필요하니까. 그런 유의 당당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가게에서 마련해둔 흡연 공간. 그 인간은 그곳에서 11개비를 연달아 피우는 기염을 토했다. 정말 일인칭 단수 그 자체다. 2인칭 시점에서는 정말 재밌고. 순간 나는 타인에 대한 애착을 떠올렸다. 그래서 써보는 부쩍 마음이 가는 것들에 관한 고찰. 일단 내 루틴과 정하상관.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일상을 보내며 안정감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항상 정문을 통해 등교하고, 후문을 통해 하교한다. 어디로 나가든 집과의 거리는 비슷하다. 정문에서는 가관이 보인다. 조교실은 2층에 있다. 2층 바깥의 한구석에는 흡연구역이 있다. 퇴근하고서는 도서관 들러..

I am so jotted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3.04.10 02:04

지난 2월 전입 신고를 하며 공식적으로 깍쟁이 서울시민이 되었다. (날샌돌이는 그냥 깍두기 아니냐고 했지만) 대학원 입시는 잘 풀렸다. 사실 이문에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날샌돌이네 학교를 붙어 버렸다. 근데 병원 생각하면 서강대가 제일 가깝긴 하다. 아 망원은 대흥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거리다. 이문동을 떠나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나의 옥탑방은 종종 창문으로 바람이 샜다. 엘리베이터도 없었고. 그래도 옥상에서 개기월식 보는 건 즐거웠다. 근데 내가 더는 외대생이 아니라는 건 아직 어색하다. 졸업식날 학과장 교수님께 편지를 드렸다. 동기들은 교수님이 뒤에서 우셨다는 사실을 전해줬다. 나는 졸업식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며 울었다. 지난 8월 조교 인수인계차 모현으로 향했을 때였다..

23.01.24 - 01.26 물쫄면이 그리워
모현민의 타지 생활 2023.01.28 19:51

2023년 1월 24일9시 50분이었다. 작은 버스 터미널에서 몇 년 전 태워 주셨던 버스 기사님을 다시 마주쳤다. 무의식적으로 버스에 올랐다."어디로 가는 겨""아무데나요. 소정리?""옥천에 소정리가 세 개여;"저 버스 타면 된다고, 10시 차라며 다른 버스를 가리키셨다. 나랑 할머니 한 분만 탔다. 가는 길에는 새로 생겼다는 (오래 전 기준이다) 투썸도 보고, 충북산업과학고의 정류장명이 아직도 옥천상고 앞임을 인식했다.소정리가 예쁘다길래 미루다 드디어 왔다. 카페 프란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오픈 전이라며 안내해주신 2층의 창 너머로 눈보라와 함께 대청호의 전경이 펼쳐졌다. 동탄에서 왔다니 어떻게 알고 왔냐며 물으셨다. 정지용을 좋아해 오던 게 이렇게 굳어졌다 말하니 시집 세 권을 들려 주셨다.나가면서는..

아무래도 역마살이 있는 건가
카테고리 없음 2022.12.31 16:41

학기 초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이번 하반기가 처음이었다. 그리스에서 돌아오자마자 인턴십 근무를 시작했으며, 9월 말에는 토익 시험을, 10월엔 혼신의 힘을 다해 중간고사를 끝냈다.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대학원 지원을 위한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연세대와 외대를 써두고선 바로 졸업시험을 준비했다. 졸업시험 통과 여부 확인 후에는 서강대 서류를 작성했으며, 곧바로 연세대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3주 간 매주 토요일 차례로 면접을 봤다. 최종 결과는 그제 나왔다. 서강대와 외대에 합격했다. 인턴십은 오늘로써 종료된다. 운이 좋게도 모든 일이 목표대로 흘러간 4개월이었다. 생각해보면 3학년 1학기를 기점으로 한 학기 마다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고시원에서 나와 잉글랜드로 향했..

막학기의 한가운데에서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11.15 23:56

졸업시험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국제통상학과는 전공 필수인 여섯 과목 각각에서 B+ 미만을 받게 되면 졸업시험을 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해 영국 교환을 가며 2학기에 열리는 전필 과목 세 개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시험 기회는 전공 필수 과목을 모두 이수한 학생, 혹은 이수 중인 막학기생에게만 주어져서, 지난 달 내내 졸시 준비로 꽤 애를 먹었다. B0를 받았던 미시경제분석, 그리고 학기 중인 국제수지론, 국제무역론, 국제계약법 까지 총 네 과목이었다. 이변은 여기서 시작했다. 애당초 학과에서 공지한 2차 졸업시험 날짜는 11월 말이었지만, 미뤄지며 12월 3일이 되었다. 그날은 연세대 대학원 면접이 있는 날이다. 그렇다면 네 과목 모두 1차 시험 때 한 번에 통과해야 했다. 다행히도 세 과목은 족보..

선생님 저는 여름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10.14 23:25

화요일 오전 열한 시. 매주 돌아오는 상담 시간이었다. 갖가지 핑계로 미뤄왔던 절차를 밟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물으셨다. 절차를 밟음으로써 기대하는 것이 있느냐며.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선생님, 저는 여름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사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질척이는 더위를 즐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현자임이 분명할 테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극단적인 날씨를 극단적으로 즐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내리쬐는 볕에서도 놓지 못했던 재킷을 나는 곧 벗을 수 있게 된다. 여름과 겨울의 옷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설렘. 그제야 나는 최초로 여름을 고대하고 있는 나를 의식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건 대강 삼만 번 째인 것 같다. 너무 갔나. 2019년 ..

수업이 귀에 안 들어온다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09.26 16:29

어제 토익을 보러 다녀왔다. 대강 계산해보니 900 초중반 정도 나올 것 같다. 얼마 전엔 "절차" 일정도 잡았다. 받고 일주일 뒤 중간고사라니. 막학기의 일정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나는 그지. 알그지. 그럼 이제 남은 일: 졸시 4개... 대학원 지원... 본전공과 이중을 둘다 살리고 싶다가도, 그냥 콘텐츠 하고 싶다가도. 왔다갔다하는 요즘이지만, 내가 완전히 해보고 싶은 일을 찾은 적이 없어서, 그냥 콘텐츠 쪽으로 지원해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해보고 싶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다. 멋쟁이 토마토가 되어야지.

반건조 오징어의 회고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09.10 23:32

올해 여름 날 추모 공원 벤치에서 자다가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여덟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섯 시면 문을 닫는 곳에서, 당연하지만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밖에서 잠이 들어버린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비 온 뒤의 질척한 시골길에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며, 그런 내 모습이 꼭 눅눅한 반건조 오징어 같다고 생각했다. 여름만 되면 회까닥 돌아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반건조 오징어. 그렇지만 빗물에 젖어도 여전히 반건조 오징어는 반건조 오징어인 법이다. 모든 각이 정확히 90도로 짜맞추어진 조각비가 내리는 공간. 네모진 형태가 아니라도 보통은 도형의 형태를 쌓을 법도 하다. 그러나 2022년 9월의 나는 태연히 반건조 오징어를 쌓아 올리고 있다.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