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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저는 여름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 10. 14. 23:25

    화요일 오전 열한 시. 매주 돌아오는 상담 시간이었다. 갖가지 핑계로 미뤄왔던 절차를 밟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물으셨다. 절차를 밟음으로써 기대하는 것이 있느냐며.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선생님, 저는 여름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사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질척이는 더위를 즐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현자임이 분명할 테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극단적인 날씨를 극단적으로 즐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내리쬐는 볕에서도 놓지 못했던 재킷을 나는 곧 벗을 수 있게 된다. 여름과 겨울의 옷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설렘. 그제야 나는 최초로 여름을 고대하고 있는 나를 의식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건 대강 삼만 번 째인 것 같다. 너무 갔나. 2019년 1월, 스무 살의 나는 한강을 건너며 문득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의 결심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도 같다고. 더는 도와줄 사람도 없는 드넓은 강바닥에서 나는 어떻게든 나를 구조해 스스로 물기를 닦아 내어야만 했다. 그대로 가라앉을 수는 없었다.

    강을 건넌 이유는 평범함을 영위하기 위해서였다. 아쉽지만 평범함을 얻고자 나는 최근 7년 간 세 번의 고비를 넘겨야 했으며 아직 두 번의 절차가 더 남아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평범"이 무엇인지는 나조차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여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여름은 도무지 숨을 수 없는 계절이다. 모든 것은 강렬해지고 얇아진다. 나는 그 적나라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실은 좋아하고 싶었다. 하나의 계절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대학생활 중 내가 영위하게 된 최고의 평범함이다.

    + 토익은 975점을 받았다. 와아.

    지난 여름 잠깐 거주했던 테살로니키의 아노 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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