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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건조 오징어의 회고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2. 9. 10. 23:32
길에서 만난 나비와 우리집 물고기 올해 여름 날 추모 공원 벤치에서 자다가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여덟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섯 시면 문을 닫는 곳에서, 당연하지만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밖에서 잠이 들어버린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비 온 뒤의 질척한 시골길에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며, 그런 내 모습이 꼭 눅눅한 반건조 오징어 같다고 생각했다. 여름만 되면 회까닥 돌아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반건조 오징어. 그렇지만 빗물에 젖어도 여전히 반건조 오징어는 반건조 오징어인 법이다.
모든 각이 정확히 90도로 짜맞추어진 조각비가 내리는 공간. 네모진 형태가 아니라도 보통은 도형의 형태를 쌓을 법도 하다. 그러나 2022년 9월의 나는 태연히 반건조 오징어를 쌓아 올리고 있다. 테트리스 블럭으로 가득한 2차원의 공간 속에서 웬 반건조 오징어가 점점 그 존재감을 과시하며 그 사이의 틈을 벌려 간다.
모두들 쏟아지는 네모들 사이에서 한 줄의 네모를 맞추려 안간힘을 쓰지만 비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는 쌓아 올리는 것이 전혀 능사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사실 반건조 오징어를 쌓는다면 아무리 높게 쌓아도 게임은 계속된다. 사각의 조각비는 어느새 반건조 오징어로 변한다. 후들댈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잉구.
...그리고 가을의 초입에서 나는 말라 비틀어진 오징어가 되었다는 걸 체감한다. 요즘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수분 부족은 아니다. 아 맞나? 다음주 화요일에 상담 일정이 있다. 이걸 얼른 해결을 보고, 9월 말에 만료되는 토익 점수 리뉴얼...을 준비하면서 대학원을 함께 알아보고... 졸업시험을 네 과목 모두 통과해야 한다. 이 계획은 안타깝게도 단 하나도 지체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 슬프지만 말라 비틀어진 오징어도 때로는 철인3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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