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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1.24 - 01.26 물쫄면이 그리워
    모현민의 타지 생활 2023. 1. 28. 19:51

    2023년 1월 24일
    9시 50분이었다. 작은 버스 터미널에서 몇 년 전 태워 주셨던 버스 기사님을 다시 마주쳤다. 무의식적으로 버스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 겨"
    "아무데나요. 소정리?"
    "옥천에 소정리가 세 개여;"

    저 버스 타면 된다고, 10시 차라며 다른 버스를 가리키셨다. 나랑 할머니 한 분만 탔다. 가는 길에는 새로 생겼다는 (오래 전 기준이다) 투썸도 보고, 충북산업과학고의 정류장명이 아직도 옥천상고 앞임을 인식했다.
    소정리가 예쁘다길래 미루다 드디어 왔다. 카페 프란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오픈 전이라며 안내해주신 2층의 창 너머로 눈보라와 함께 대청호의 전경이 펼쳐졌다. 동탄에서 왔다니 어떻게 알고 왔냐며 물으셨다. 정지용을 좋아해 오던 게 이렇게 굳어졌다 말하니 시집 세 권을 들려 주셨다.
    나가면서는 봄에 또 오라고 하셨다. 다들 이렇게 말한다. 겨울에 오면 봄에 오라고, 여름에 오면 가을에 오라고. 비성수기가 좋아 온 거라는 말을 삼켰다. 손에 한동안 온기가 남았다. 날이 춥다며 쥐어주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덕택이었다.
    돌아오며 구읍에 들러 정지용 문학관을 돌았다. 느린우체통이 생겼길래 엽서를 썼다. 사무실에서 직원 분이 엽서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구경 오셔서 굉장히 머쓱했다.
    시가지로 돌아와서는 이디야에 주저앉았다. 내 지정석은 또 남아있었다. 인기 있을 법한 자리인데도 말이다. 내 취향이 독특한 건가.
    바로 건너편에 있던 아바이 순대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손님이 많다가 내가 가니 쓱 빠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국물만 먹었다. 모현읍 할순을 이길 곳은 오늘도 찾지 못했다. 607번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오면서는 내내 울었다.

    2023년 1월 25일
    원래는 부소담악으로 갈까 했는데 버스가 안 보이길래 그냥 둔주봉으로 향했다. 등산길이 길어서 내려오면서 시간을 재 봤는데 26분이 나왔다. 분명 등산길인데도 오르막 내리막은 있었다. 그냥 완주만 하면 된다는 말을 불현듯 떠올렸다. 그치만 여전히 가파른 길은 내려갈 때에도 힘이 드는 법이었다. CCTV도 블랙박스도 없는 오롯한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다행히도 하산길에 고양이를 만나 한참을 동행했다. 두고 오고 싶지 않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오는 길에 장계관광지 앞의 새로운 카페를 포착했던 터라, 가는 김에 들러 보았다. 지난번 고구마라떼 마셨는데, 이번엔 리뉴얼을 최근에 했는지 페인트 냄새가 채 다 빠지지 않았다. 메뉴도 바뀌었고. 이번에도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덕택에 잠시 들르려다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시내에 돌아와서는 이자카야로 향했다. 닭염통꼬치와 생맥. 500cc에 3500원이면 서울과는 비교할 수도 없네, 생각했다. 3잔을 마셨다.
    몸에 나쁜 건 정말 즐겁다. 버릇 되면 정말 안 좋고.

    2023년 1월 26일
    느지막히 카페 삼양리에 왔다. 첫 아인슈페너를 다시 마셨다. 그간 뭘 마셔도 그만큼의 감동은 찾지 못했는데, 맛이 오히려 더 그닥이다. 여기도 그 맛은 없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케밥의 본고장인 터키에서도 리버풀에서의 케밥 맛을 찾아 헤맸는데, 어쩌면 터키의 케밥이 더 맛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현실은 역시 이상을 이길 수 없었다.
    4시에 온다던 친구는 7시가 다 되어서야 역으로 왔다. 일을 며칠 간 연달아 했던 터라 기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는 사족도 함께 왔다. 1밀리짜리 담배를 보고선 상남자는 아니구나, 하는 유의 개소리는 여전했다. 줄담배 피우며 흰색 패딩에 담뱃재는 한 번도 안 흘리는 자타공인 골초. 두 달 끊어봤는데 일주일 차에 오한이 생겼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새 욕이 줄었다.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야"
    "그러게 항상 지나봐야 알더라, 그게 천운이었다는 걸"

    우리는 정상 속에서 각기 다른 비정상성을 감추려 애쓴다. 동시에 비일상 속에서의 일상을 찾고, 현재 속의 과거를 찾으며,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으로 기척을 찾는다. 그 흔한 스타벅스로 향하려면 2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 충북 옥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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