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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의 고찰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1. 7. 21. 23:46
제목은 글의 전부를 담는다. 그렇다고 글을 모두 보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목은 가장 나중에 설정해야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한다. 마음이 앞서 써 내려간 제목은 자칫 내용을 한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제목을 일단 설정하고 본문을 써 내려가고 있다.
사실 이곳에 쓰는 웬만한 글은 정해진 주제가 없다. 그러나 더는 쓰지 않는 폴더를 정리하듯 무제1, 무제2 라고 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제목을 애써 붙여왔다. 오늘의 제목은 '아니 땐 굴뚝의 고찰'. 대강 짐작하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에서 착안했다. 마땅히 글을 쓰는 이유는 없지만 만들어보겠다는 뜻이다. 빙빙 돌렸을 뿐, 결국 오늘도 주제는 없다.
정해진 주제가 없는 글은 대부분의 경우 한 곳을 향한다. 아마 그래서 그런가 보다. 주제가 없는 대부분의 글에 네 생각이 담기는 것이. 전하지 못할 고찰, 달에 관한 고찰이다. 한두 번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그러다 온통 취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지난 2년간 줄곧 취해 있었다. 취해 있다. 그리고 더는 취해 있으면 안 된다.
이틀 전이었다. 온라인으로 뮤지컬을 하나 봤다. 문스토리. 달의 이야기. 퇴근하고 할 일도 마땅치 않았는데 잘된 일이었다. 그리고 너와 비슷한 사람이 나왔다. 달에 있는 아이와 지구로 건너온 아이, 그리고 달도 지구도 아닌 곳에서 존재하는 아이. 그 사람은 달도 지구도 아닌 곳에서 존재하는 아이였다.
지구로 건너온 아이는 달도 지구도 아닌 곳에서 존재하는 아이의 전부였다. 그러나 망각을 가장한 외면으로 그는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달에 있던 아이는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그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돌아간' 사람은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라고. 더는 없는 거다. 더 있기를 바라는 건 조금이나마 더 존재해 보려는 자의 발악에 불과하다.
"약속해 다시는 널 잃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날 잊지 않겠다고"
극의 후반부에서 달의 아이는 지구에 남는 아이에게 말한다. 지구로 떠난 아이, 달로 떠난 아이. 여기서 떠나는 자는 누구인지 고민했다. 지구에 남는 아이가 달을 기억한다면 그는 떠나는 자일 것이고, 달을 기억하지 않게 된다면 떠나는 자는 달의 아이가 될 테다. 그러나 서로는 서로에게 떠난 자로 남는다. 결국 이것도 발악이다.
나는 더는 네가 그립지 않다. 사실 네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어색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오늘도 고찰이라는 핑계로 전하지 못할 글을 쓰는 건, 나에게 너는 영원히 떠난 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말의 발악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최악의 바락바락이다.
달은 끝까지 지구를 붙잡았다. 그러나 세상엔 달과 지구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름 모를 수많은 근지구천체는 오늘도 달과 같이 지구를 맴돌고 있다. 그냥 제일 큰 천체에만 이름이 부여되었고, 그냥 그 이름이 달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붙잡고 있는 편은 지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달은 중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일부로 '고찰'을 담은 제목을 버리기로 했다. 지난 2년 나의 달은, 나의 고찰의 끝은 너를 향해 왔으니까. 내일부터는 일상이다. 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제목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겠다. 이것이 오늘의 아니 땐 굴뚝의 고찰이자, 당분간의 마지막 고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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