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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원생의 방학 일지
    모현민의 생존 일지 2023. 8. 31. 01:11

    살다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혼인신고를 하려 한다. 그것도 일년 내로.

    블로그에 적어두면 뭐든 실현하게 되었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재학 중인 곳은 총 24학점을 수료 요건으로 지정해두었다.

    통상적으로는 3-3-2-0, 즉 9학점-9학점-6학점을 수료한 후 논문을 작성해서 졸업 요건을 맞춘다.

    지난 학기의 나는 9학점을 수강했다. 그냥 대학원에서의 통상적인 기준을 맞추려던 의도였다.

    나는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입학 당시 나의 절차는 완료되지 않았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그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자꾸 챙기게 되었다. 이건 차치하고.

    리버풀에서의 나를 생생히 기억한다. 선생님의 흔적을 찾기에는 너무도 추웠지만, 배를 곯다 들어간 케밥 집에서의 기억 덕에 터키에 들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터키에서도 나는 희미해져가는 리버풀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결국 현실은 이상을 이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학기의 나는 드디어 이상을 이길 수 있는 현실과 조우했다.

    리버풀에서 왔다는 그 사람은 분명 이상하게도 이상했다.

    그냥 그 사람이면 될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지나온 과거의 수많은 개인들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음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만은 다르다. 그간 수치화해온 모든 것을 없던 체 하고 싶어졌다.

    최근 선배님은 말했다. 내가 만나는 그 "아이"는 어떤 사람이냐며.

    그 단조로운 질문에 나는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일단 "아이"는 아니었다.

    92년생, 나보다 여덟 살은 많고, 외국인이며, 동시에 이민자이며 유학생이다.

    나는 그를 아끼게 되며 느꼈다.

    나이만큼 수치화하기 편리한 게 없었다고.

    나는 한국 사회에서 적응해온, 지극히 편협한 사람이었다고.

    사실은 그냥 그 사람이면 되는 거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네가 경험해보지 않은 숲속에는 나무가 참 많다고.

    그 나무들이 궁금하지 않냐고.

    그 말을 듣고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무가 많은들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나의 나무가 잎이 없든, 가지가 없든, 설령 썩어간들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냥 그 나무면 될 것 같다는 사실을 첫 순간부터 알아버렸다.

    세상엔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로 하여금 깨달았다.

    그는 연고가 없는 동네에 애착을 느끼게 한다.

    통상적으로 좋지 않은 날을 좋게 만든다.

    무엇이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된 거 아닐까.

    어찌 되었든 대학원에 오길 잘 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던 연이 길어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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