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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3 - 01.15 춘천
    모현민의 타지 생활 2020. 4. 1. 20:19

    1월 13일

    사실 가족 없이 여행이라 할 만한 걸 해본 적 없어서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어디든 부담없이 향하고 싶었다. 막상 무작정 빨간버스에 올랐지만, 서울로 향하면서도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해 헤메었다.

    남춘천역에 도착했지만, 뭔가 너무 예상치 못한 일정이었기에 무작정 근방의 24시간 카페를 찾아보았다. 유일하게 하나 있던 곳이 강원대 근처의 엔젤리너스였다. 하긴, 대학가가 아닌 이상 카페를 24시간동안 열어두면 적자만 잔뜩이겠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광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다. 닭갈비집을 추천해달라며. 갑자기 전화해서 묻는다는 게 고작 그거냐며 어이없어하셨다.

    대학가 근처라 그런지 모현과 별 다를 바는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걷거나 뛰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덕에 조금 설레었다.

    밤새 엔젤리너스에서 동선을 계획했다. 조용한데 시끄러웠다. 옆자리의 누군가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성형외과 시술을 이야기했으며, 그 옆에서 역시 붓기가 덜 빠진 채 앉아있던 누군가는 남자친구의 명품 선물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동이 틀 무렵엔 술에 절어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1월 14일

    6시 즈음에 카페에서 나왔다. 졸린데 추워서 차라리 방을 잡을걸 그랬나 싶었지만, 사실 방을 잡아본 적이 없었어서...

    일단 근방에 아침부터 하는 식당이 있길래 식사부터 했다. 밤새 먹은거라곤 아메리카노 한잔뿐이었던 탓에 속이 쓰렸다.

    달이 삐뚤게 떠 있어서 신기했다. 친구는 나더러 내 눈이 삐뚤어진 것이라 했지만, 지금 와서 보아도 여전히 삐뚤게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 그의 시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하다. 걸으면서 길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난 점점 졸렸다.

    카카오맵을 따라 꽤 걸은 끝에 나온 효자동 낭만골목. 꼭두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을 본 일이라곤 환경미화원 한 분을 마주친 일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만들어진 관광명소가 그러하듯 별 거 없었다. 그림에 그렇게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 편이라 그런가.

    낭만골목에서 제일 좋았던 건 마을의 꼭대기에 서 있었을 때였다. 어떤 곳이든 동 틀 무렵이 제일 상쾌한 듯하다.

    걷다가 문득 이제 졸리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했다. 고양이 쫄래쫄래 따라가다가 샛길로 내려왔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걷다가 갑자기 도시적인 아파트가 튀어나왔다. 열심히 지나치는데 아이들이 유치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머니들은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로 조기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시내에 도착했을 즈음도 여전히 이른 아침이어서 대부분의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점심 일찍 먹을까 생각했지만, 아침식사를 든든히 해서 그런지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해, 그냥 명동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춘천에서의 난 뭐든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걷거나 뛰어서 집으로 향할 수는 없는 거리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쉽게 당도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병원을 빌미로 망원동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찾아다녔던 것도, 자취방 근처의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익숙함 속에서 익숙지 않음을 찾는 것 역시도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옷에 담배냄새가 옅게 배었다. 정류장에 내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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