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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는 건가?모현민의 타지 생활 2021. 10. 17. 09:56
영국에 도착한 지도 한 달이 넘어간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떠날 때까지도 결코 정착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중이다.
일주일 전 맨체스터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마침 같은 시기에 교환을 오게 되어 다행이었다. 친구는 영국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 했지만, appointment를 잡으려니 제일 빠른 시간이 한 달 후여서 포기한 상황이었다. 계좌 개설에 성공한다 해도, 떠나기 전 계좌를 닫으려면 또 appointment를 잡아야 한다며, 그 과정을 겪는 것보다는 그냥 수수료 떼이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도 계좌 개설을 깔끔히 접었다. 이젠 굳이 나서서 지치는 상황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모든 게 느리다. 모든 통신은 메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느리다. 5개월 반이 걸린 수강신청과, non-visa national에게 입국 스탬프를 받으라고 하는 학교, 그리고 non-visa national이라 스탬프를 찍어줄 수 없다는 입국심사관, 여권을 보였음에도 Chinese vaccination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코로나 검사를 실시하게 한 덴마크의 입국심사관. 내게 영국의 첫인상은 그냥, 별로다.
한 달간 수많은 일이 있었고, 죄다 힘겨웠다:
1. 입국 후 2일차, 5일차, 8일차 코로나 테스트
2. 격리 풀리기도 전에 학교로부터 재입국 통보
3. 도착 10일 지나자마자 왕복 26시간 덴마크 여정
4.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영국 도착 후 10월 7일까지 격리
5. 개강 1주차 수업 못 듣고 수강변경그리고 다섯 개의 번호들이 파생한 수많은 절차와 통화와 메일과 검색이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땐 세세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이미 여러 사람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느라 지쳐버렸다. 그냥, 영국의 현인상도 별로라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여튼. 그간 닥친 일들이 많아 오랜만에 블로그에 접속했다. 왜인지 집에 온 기분이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무슨 사건이 생기면 일단 여기에 글부터 쓰면서 생각을 정리했는데, 공개된 공간에 멋모르고 기록을 참 많이도 남겨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모든 과거의 글이 그렇듯, 나는 그걸 모두 삭제하고 싶다. 그렇지만 인생은 퇴고의 연속이다. 고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방해하면 안 된다. 그래서 오점 가득한 과거를 당분간은 이대로 두려고 한다. 항상 생각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장도 언젠가는 삭제하고 싶은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오늘도 기록을 남기는 건, 항상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조금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글을 많이 써 봐야겠다. 한국어 구사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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